충남 4대 사찰 중 하나인 개심사는 상왕산(307m)의 울창한 숲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봄철에는 벚꽃이 호젓한 산길을 따라 주차장에서 절마당까지 피어납니다. 대웅전은 백제시대 기단 위에 조선시대의 건축법으로 중창되어 아름다운 건축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심사는 백제 말기인 654년 예감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대웅전은 조선시대 건축법으로 재건되었습니다. 백제계연못은 백제시대의 느낌이 가장 많이 느껴지는 곳 중 하나입니다. 개심사의 보물로는 계초심학인문 목판등 6종과 대웅전, 개심사영산회괘불탱,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으며, 명부전 심검당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사찰 주변의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 그리고 석가탄신일을 전후하여 만개하는 벚꽃은 사찰의 아름다운 경치를 더욱 빛내며, 속세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아름다운 선경을 만들어줍니다.
상왕산 개심사는 풍경이 아름다운 불교 사찰로, 산속의 오솔길과 개울을 건너 솔숲을 헤치면 나타납니다. 입구에 위치한 사각형 연못을 가로지르는 외나무다리의 아찔한 맛이 인상적이며, 연꽃 위를 걷는 느낌은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듯 신선합니다. 절 안에는 해강이 예서체로 큼직큼직하게 쓴 ‘상왕산 개심사’ 글씨가 있습니다. 상왕이란 코끼리의 왕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의 코끼리처럼 편안하고 여유로움을 상징합니다. 이곳을 방문하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코끼리왕 부처님처럼 여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안양루의 해탈문은 겸손한 모습으로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문은 다른 사찰의 문과는 달리 외소하게 만들어져서, 머리를 숙여서 들어가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기둥이 뒤틀리고 지붕이 낮아질수록, 해탈의 경지에 다가가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합니다. 심검당은 도량 안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시골의 툇마루와 사랑방과 같은 따뜻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심(尋)검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서는 검을 찾는 수행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찾는 참선수행을 통해, 지혜의 검으로 어리석음을 자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복숭아꽃은 매년 피고 지는 꽃이지만, 그 꽃을 꽃으로서 보지 못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심검당은 구부러지거나 휘어지는 모습 그대로를 살린 아름다운 건축물로서, 인위적으로 조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禪)이란 것은 더 보탤 것도 없고 인위적으로 조작할 필요도 없이 있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심검당의 모습은 겨울 햇살에 비춰지는 미닫이, 여닫이 등등 예쁘지 않은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고드름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은 마치 지혜의 칼이 되어 아름다운 자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개심사 대웅전
개심사 대웅전은 백제의 승려 혜감에 의해 의자왕 14년(654년)에 창건되었습니다다. 개심사 대웅전은 은 조선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시지만, 개심사 대웅전에는 아미타불과 그 양옆에 관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졌습니다. 개심사 대웅전은 여러 차례 수리와 고치기를 거쳐 현재는 거의 원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조선 성종 6년(1475)에 불에 타 없어져 성종 15년(1484)에 다시 지어진 개심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기둥 머리에 짜 맞추어 댄 부재를 공포라 하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있는 것을 다포라 합니다. 이 건물은 주심포계와 다포계가 절충되어 있는 것이 특징으로,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대조되는 중요한 건물입니다.
절의 기록에 따르면 개심사는 진덕여왕 5년과 의자왕 14년에 지어졌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백제 의자왕 14년(654년) 혜감국사가 창건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개심사 대웅전은 건물의 기본 구성이 주심포양식이며,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개심사 심검당은 기단석 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 기둥을 세웠습니다. 이 기둥의 윗부분에는 공포를 짜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 양식을 사용했습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규모를 가지고 있으며, 왼쪽에는 앞면 3칸, 옆면 5칸의 덧집이 붙어 있습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 지붕으로 꾸며져 있으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뒷부분은 홑처마, 앞은 겹처마를 사용했습니다.
이 건물은 평탄하고 안정적인 구조로, 산속의 다른 건축물과는 차이를 보입니다. 개심사 사적기에는 신라 진덕여왕 5년과 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 두 해는 다른 해입니다. 개심사 심검당 안에는 대웅전, 영산회괘불탱, 명부전, 무량수각, 아미타본존불, 관경변상도, 칠성탱화, 22종의 경전 목판, 오층석탑 등 다양한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건축 연대를 기록한 문헌이 없어서 지은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 성종 15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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