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파트너쉽은 1962년에 처음 720만 달러로 출범했다. 집중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버핏은 1966년까지 계속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투자했는데, 나중에는 이 투자금액이 1,300만 달러로까지 늘어났다. 그는 투자자들이 새로운 '기본 원칙'을 알아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가 확보한 사실들과 우리가 추론하는 내용이 옳을 가능성이 매우 높을 때, 어떤 요인으로 우리가 투자한 금액의 가치가 엄청나게 바뀔 가능성이 매우 낮을때, 이 두경우가 하나로 만나는 조건 아래에서라면 말입니다.
워렌 버핏은 스승이던 벤 그레이엄의 세계관에서 이미 많이 벗어났다. 그레이엄이 주창한 철저한 ‘계량적인’ 접근법은 우승마를 예상하는 사람의 세계, 순수하게 통계학에 입각해서 담배꽁초를 줍던 사람의 세계에 속한 방식이었다. 아침에 사무실로 출근해서, 무디스메뉴얼이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주간 보고서를 뒤적이고, 몇 개의 싼 주식들을 찾아내고, ‘트위디, 브라운 앤드 냅’의 톰 냅에게 전화해서 이 주식들을 사게 하고, 시장이 문 닫으면 집으로 돌아가고,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이면 다시 사무실로 출근하는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 있었다. 버핏은 자기가 좋아하던 이 접근법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명백하고 계량적인 판단에 입각할 때, 보다 많은 돈이 확실하게 들어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두가지 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통계적인 이익의 폭이 매우 좁게 줄어든다는 사실과 담배꽁초는 주로 작은 기업에 국한되는 경향이 있어서 많은 돈을 투자해야 할 경우에는 담배꽁초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버핏은 여전히 이 접근법을 활용하면서도 나중에 자기가, 벤 그레이엄의 핵심적인 투자 철학과 전혀 다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 대해서 ‘높은 가능성에 대한 통찰력’이라고 불렀던 것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현금과 설비, 부동산, 그리고 수치로 계산할 수 있고 또 필요하다면 청산할 수 있는 기타 여러 자산들에서 가치가 발현되는 회사들과 달리,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고객의 호감이 거의 전부였다.
버핏은 자기 투자자들의 돈, 즉 앨리스 고모의 유산, 장인인 톰슨박사의 저축액, 앤 고트챌트와 캐서린 엘버펠드의 돈, 앵글 부부가 평생 모은 돈, 벤 그레이엄의 아내 에스티 그레이엄의 돈을 고객이 느끼는 그 호감에 투자했다. 찰리 멍거가 ‘큰 사업’을 이야기할 때 말하던 바로 그 경쟁 우위 요소였다. 이것은 우승마를 예상하는 우수한 예상자의 방법론이자 필 피셔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계량적인 평가와 대립되는 질적인 평가를 포함하는 방법론이었다. 버핏은 나중에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제대로 된 전망과 장래성 있는 산업 조건, 그리고 유능한 경영진 등을 갖춘) 올바른 회사를 살때 (….) 이 회사의 주식 가격은 자기가 알아서 올라가 줍니다. (….) 이럴 때 금전 등록기는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통찰력이라는 것이 보통 그렇듯이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론 계량적으로 접근할 때는 통찰력이라는 것이 변수에 끼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수치들이 문제지요. 이 수치들이, 야구방망이가 머리를 치는 것과 같은 충격을 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적인 판단을 정확하게 잘하는 투자자들이 진짜 큰돈을 버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이 접근법 덕분에 버핏은 1965년말에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다고 보고할 수 있었다.
- 스노볼, Warren Buffett and the Business of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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